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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야기/국내,외 대표적 기업 및 정부정책 알아두기!

[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3부) 한국,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다] (19) 사회적 존경받는 대기업

[국민일보]            2013-08-11


[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3부) 한국,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다]

 (19) 사회적 존경받는 대기업










철저한 ‘先公後私 정신’… 이익 모두 회사에 재투자

1668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남쪽 다름슈타트의 ‘천사 약국’에서 비롯된 독일 화학·제약기업
머크(Merck)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가족기업’으로 불린다. 머크의 성공 비결을 담은 책 
‘머크 웨이’는 “100대 그룹의 평균 역사가 49.2년에 불과한 우리나라에 머크는 기업 경영의 교과서
같은 회사”라고 평가한다.

소유·감독하지만 경영하지 않는 머크家

작은 동네 약국에서 출발한 가족기업이13대에 걸쳐 340여년간 성장해 온 비결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리스크를 분산한 사업 포트폴리오, 꾸준한 연구·개발 투자, 그리고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성공 요인으로 꼽는다.

한국 머크의 대표를 맡고 있는 미하엘 그룬트 박사는 지난 주 국민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현재 머크 가문출신으로 독일 머크 본사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130여명의 가족들이
 5% 이내의 머크 지주회사(Merck KGaA) 지분을 비롯해 전체 지분의 70%를 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머크는 기업공개를 통해 순수 가족기업에서 벗어나 주식합자회사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회사 운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되 가족들은 경영을 감독하는 구조다.

134명의 창업자 가족들은 ‘머크 가족회의(General Partner’s Meeting)’의 일원이다. 
여기서 ‘가족위원회(Family Board)’를 구성할 13명의 가족 대표를 선정한다. 이어 13명은
 ‘파트너위원회(Board of Partners)’의 멤버를 선정한다. 파트너위원회 위원 9명 중 5명은 머크 가문 출신,
다른 4명은 외부인으로 구성된다. 파트너위원회의 역할은 머크의 운영 감독, 재무제표 채택,
 주요 투자, 인수·매각 등을 승인하는 것이다. 지배구조의 가장 위에는 4명으로 구성된
 ‘최고경영위원회(Executive Board)’가 있다. 가족위원회와 파트너위원회에서 각각 1명, 
머크 지주회사 임원 중 2명으로 구성된다.

가족들은 지주회사 머크를 경영하는 최고경영위원회를 감독하고 투자에 대해 조언하지만 
일상적으로 회사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다. 머크 가문 출신들은 어릴 때부터 주주로서 기업
경영을 배우지만 직원으로 입사할 수 없다. 외부에서 전문성을 쌓고 경력을 인정받으면 
경영진 형태로 참여할 수 있다.

“독일식 상속 제도가 가족기업 살려”

머크의 사례는 삼성, 현대자동차, LG 등 가족 경영 형태를 가진 국내 기업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머크의 지속성장은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과 창업자 가문의 끊임없는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룬트 박사는 “머크 일가는 회사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이익금은 모두 회사에 돌아가도록 한다”
고 말했다. ‘선공후사(先公後私)’에 철저한 것이다. 가족들은 언제나 수익이 나면 회사에 재투자했다.
배당을 받으면 많은 부분을 회사에 내놓는다. 머크가의 궁극적인 관심은 회사의 지속 성장이다.

그룬트 박사는 “머크가 스위스 기업 세로노를 인수했을 때도 인수 자금은 가족들한테서 나왔다”
며 “가족들은 투자 결정과정에 참여한다”고 설명했다. 인수 합병 전략을 승인하는 동시에 
자신들이 인수자금을 마련하는 식이다. 2001년 머크가 항암 분야에 투자할 당시에는 투자에 
대해 모든 가족 구성원이 완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다. 그래서 14∼20세의 
머크 가문 자녀들을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한 대학에 보내 종양학 치료제에 대해 공부시키기도 했다.

머크가 오랜 세월을 가족 기업으로 이어올 수 있었던 데는 독일식 상속 제도도 큰 도움이 됐다. 
머크 집안의 사위인 프랑크 슈탄겐베르크 하버캄 파트너위원회장은 “과도한 상속세로 기업이 
유동성 위기에 빠지는 사태를 독일 정부가 막아줬다”고 말한 바 있다. 지분을 물려받으면 보통 
10%에 해당하는 상속세가 부과되지만, 상속 이후 10년간 고용이나 총임금을 현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겠다고 약속하면 상속세가 유예되는 조항 덕분이다.
10년간 약속을 지키면 상속세가 면제된다.

전통을 발판으로 혁신을 실천하는 기업

머크는 지난 5월 회사의 새 슬로건을 발표했다. ‘Living Innovation(살아있는 혁신)’이다. 
당시 ‘머크 웨이’의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방한한 칼 루드비히 클레이 머크 회장은
 “혁신적 변화는 언제나 우리의 안전성을 보장해주는 기반”이라며 “혁신적인 의약품, 
혁신적인 첨단 화학제품, 생명과학 분야의 혁신적인 제품을 제공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머크는 2만6000개의 특허를 갖고 있다. 연구개발에는 매년 10억 유로(1조4900억원) 이상을 투자한다. 
그룬트 박사는 “특허는 노하우와 경쟁력 제고에 있어 아주 중요하지만 우리는 특허보다 훨씬 많
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연구 환경이 혁신을 촉진하는 셈”
이라고 설명했다.

머크는 의약사업 분야의 경우 종양·다발성경화증과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 류머티스 질환 분야에서
신약을 개발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화학사업 분야에서는 액정과 안료 부문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또 생명과학업계에 혁신적인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OLED, 태양광, 유기전자 기술 등에 필요한 신소재 개발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머크는 휴대전화
·노트북·TV 등에 탑재되는 디스플레이 패널의 핵심소재인 액정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액정 디스플레이 소재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점유율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67개국 228개 자회사에서 4만여 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1989년 한국 법인을 설립한 머크는 국내에 첨단기술센터와 OLED 애플리케이션 연구소를 열었다.
 그룬트 박사는 “처음 진출할 당시부터 한국이 신기술 개발의 중심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고 말했다.

머크를 이끌어온 여섯 가지 가치 ‘용기, 존경, 책임, 투명성, 온전함, 성취 그리고 사람’

그룬트 박사는 “머크는 가치 중심 기업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써서 벽에 걸어 두고 일하지 않는다”
면서 “가치는 직원들 마음속에 있고 우리는 회사 가치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이를 기준으로 결정을
내린다”고 자부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때 머크의 거의 모든 건물이 폭격으로 무너졌지만 직원들은 바로 다음날
출근해 복구 작업에 참여해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는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고 그때 
생겨난 용기와 존경, 책임 등의 가치는 항상 가족과 회사를 견인해 왔다.
 이것이 머크의 성공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는 기업 문화에서는 문제가 발생해도 언제든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
 머크의 철학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있다. 인재(人才) 경영이다.
 “Was der thun kann(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1842년 엠마뉴엘 머크가 한 말이다. 
회사의 가치관을 그대로 드러내는 말이다.

그룬트 박사는 “진정한 혁신은 강요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가 자랄 수 있는 
창의적인 환경에서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직원들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이들의 창의성과 업무 능력이야말로 머크의 
가장 중요한, 시장에 신제품을 내놓을 수 있는 핵심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